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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북한에서 있은 일이다. 1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최악의 식량난속에 북한주민들의 탈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날 때였다. 당시 압록강과 두만강의 북중세관들에는 중국공안에 잡힌 탈북자들이 매일같이 꼬리를 물고 북송되군 했다.

 

그들은 보위부(비밀경찰)와 보안서(경찰)에서 혹독한 취조를 받은후 노동단련대(남한의 80년대 삼청교육대와 같은 곳)(강제노동)와 교화소(교도소)에 보내져 혹독한 처벌을 받았다. 탈북후 중국에서 남한행을 시도했거나 기독교를 접촉했던 사람들은 정치범 수용소로 보내졌다.

 

북한정권은 주민들의 탈북행위를 심각한 체제위협으로 간주하고 그것을 막으려고 혈안이 되어 국경을 이중삼중으로 봉쇄. 북송된 탈북자들을 잔인하게 처형, 처벌하는 방법으로 주민들의 이탈을 막으려고 애썼다.

 

그렇게 탈북과 북송, 잔인한 처벌의 악순환이 10년인 넘도록 계속되던 2003년 김정일의 특별지시가 전국의 사법기관들에 하달되었는데 그것은 충격적인 것이었다. 김정일은 보위부와 보안기관들이 생계형 탈북자들을 절대 처벌하지 말고 고향으로 보내주며 각 지방의 당 정권기관들은 북송된 탈북자들이 안착할 수 있도록 특별히 도와줄데 대한 지시를 내렸다.

 

김정일이 왜 그런 지시를 내렸는지는 모른다. 북송된 탈북자들에 대한 잔인한 인권유린을 규탄하는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했는지, 아니면 생계형 탈북자들이 진짜로 불쌍하다고 생각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여하튼 중국에서 체포북송되어 혹독한 처벌을 받던 수많은 사람들이 김정일의 "배려"로 풀려났다.

 

김정일의 특별지시는 단순한 사면이 아니라 "배려"에 가까운 것이었다. "죄를 지은자들"에 대한 관대한 용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풀려났다. 교화소(교도소)에서 죽어가던 사람들, 보위부(비밀경찰)에서 비인간적 취조를 받던 사람들, 재판을 받고 감옥의 문앞에 갔던 사람들, 모두가 김정일의 "배려"를 받았다.

 

당시 그들의 기분은 어땠을까. 다행이라는 생각, 혹은 운수가 좋았다는 생각을 앞세웠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김정일의 특별지시에 감사했을 것이었다. 허지만 김정일의 "은덕정치"는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오히려 뒤통수를 맞았다.

 

북송된 후 김정일의 특별지시로 풀려났던 사람들 대부분이 다시 탈북했기 때문이다. 그 땅에서는 도저히 살아남을 수가 없어서, 그 땅에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어서. 분명한 것은 당시 김정일의 특별지시대로 모든 지역의 당 정권기관들이 북송된 탈북자들에게 집은 커녕 쌀 한토리 주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북송된 탈북자들을 안착시킬수 있는 경제적 여건이 없은 것이 당시의 현실이었다.

 

김정일은 무엇을 몰랐을까. 그는 비참하게 살아가는 북한주민들의 현실을 몰랐다.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비정상적인 현실을 김정일은 정상적이라고 착각하고 있은 것이었다. 피상적인 시각으로 탈북자 문제를 바라본 것이었다.

 

북송된 탈북자들을 취조하는 북한의 보위부나 보위부 요원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다. "한 번 탈북했던 사람은 꼭 다시 탈북한다"는 말이다, 그들은 북송된 탈북자들을 취조할 때 "너 다시 중국에 가겠어?"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다시는 안 갈것"라는 틀에 박힌 대답을 듣고서는 피식 웃군한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거짓 말을 하지말라"고 악에받친 고함을 지르기도 한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제발 중국에 다시 가지 말라고 애원하다시피 말하기도 한다. 그들도 자기 관할구역에서 탈북자가 생기면 처벌을 받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민들의 탈북에 익숙해 있다. 그들도 북한사회에 만연한 주민들의 탈북행위를 공권력을 동원한 물리적방법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북한사회에 만연한 탈북의 가장 큰 이유는 전대미문의 경제난이다. 국제사회는 탈북여성들의 인신매매를 비참한 인권유린으로 인식하지만 북한 사람들은 인신매매를 당하더라도 중국에서 살고싶어한다. 중국에서 인신매매나 착취대상이 되어 비참하게 살다가 체포북송되어도 기회만 있으면 다시 탈북한다. 그 사실 하나만 봐도 북한주민들의 삶이 얼마나 열악한지를 알 수 있다. 그것이 북한현실이다.

 

최근 북한정권은 남한과 해외에 체류한 탈북자들을 회유하여 재입북시키는 모략을 확대하고 있다. 보위부(비밀경찰)내에 전담부서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의 모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것은 최근 북한으로 재입북했다가 다시 탈북하여 중국공안에 체포된 김광호 가족 사건이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북한정권은 먼저 할 일과 후에 할 일을 헷갈리고 있다. 북한정권이 먼저 해야 할 일은 하루빨리 경제를 활성화 하여 북한사회를 사람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개혁개방을 하고 억압적인 통치가 사라져, 북한이 사람 살만한 곳이 되면 오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제발로 찾아갈 것이다. 최악의 경제난을 그대로 두고 북한정권이 이룰것은 아무것도 없다.

 

허태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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