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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단속실적 홍보에만 치중… 사료로 만든 불량 후리가케 이름 함구

소비자-업계 “불안만 부추겨” 비판

[동아일보]

“아이가 거의 매일 먹어 온 맛가루(밥에 뿌려 먹는 분말가루·후리가케)에 가축사료와 쓰레기가 뒤섞였다는 신문 보도를 보고 속상해서 눈물을 흘렸어요. 그런데 어떤 제품이 그렇다는 건지 알려주지 않으니 엄마들은 도대체 어쩌란 말입니까.”

서울 송파구에 사는 주부 박모 씨(33)는 3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아이들이 즐겨 먹는 맛가루에 폐기 대상 채소 등 불량 식재료가 사용됐다는 경찰 발표가 알려진 3일 소비자와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경찰이 해당 제품명에 대해 함구하고 있어 부모들의 걱정을 부채질하는 것이다. 비단 맛가루뿐만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근절 대상 4대악으로 규정한 뒤 경찰 등 사법당국의 불량식품 제조업자 검거가 급증하고 있지만 단속 실적만 발표할 뿐 제품명 등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아 소비자들의 불안을 부추기고 불량식품과 무관한 다른 업체들이 억울하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

3일 취재팀이 서울 송파구 중랑구 강남구 용산구 등의 대형마트 5곳에서 만난 주부들은 그동안 아이가 먹어 온 맛가루에 불량 재료가 포함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걱정과 답답함을 토로했다. 강남의 한 대형마트에서 장을 보던 주부 나모 씨(32)는 “평소 밥을 잘 안 먹던 아이들도 맛가루를 넣으면 맛있게 먹어 즐겨 이용해 왔다. 하지만 어떤 제품이 불량품인지 알 수 없어 아예 맛가루 자체를 사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육아 관련 인터넷 사이트에는 3일 “냉동실에 있던 맛가루를 다 꺼내서 버렸다” “폐기용 채소로 아이 음식을 만들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분노하는 글이 쏟아졌다. 불안한 엄마들은 “불량 재료가 포함됐다는 맛가루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니 일단은 먹이지 않고 있지만 아이가 밥에 비벼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 고민스럽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식품안전소비자신고센터의 한 상담원은 “경찰 발표 이후 불량 재료가 들어간 맛가루 상품명을 묻는 전화를 수십 통 받았지만 우리도 아는 것이 없다”며 “문의해 온 부모들에게 경찰청 민원전화(전화 182)를 가르쳐 드릴 뿐이다”라고 말했다.

“매장서 다 빼라”… 애꿎은 업체들도 날벼락

서울지방경찰청은 2일 “폐기하거나 가축사료로 써야 하는 채소를 가루로 만들어 맛가루 제조업체 A사 등에 납품한 식품가공업체 I사 대표를 입건했으며 이 맛가루는 전국의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유통됐다”면서도 제품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서울지방경찰청은 3일에도 멸균 시설을 갖추지 않고 유통기한이 지난 누에분말로 건강기능식품을 만들어 홈쇼핑 등을 통해 유통시킨 4개 제약사 및 협동조합 관계자를 검거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번에도 “건강기능식품과 제약사의 명칭은 일반에 공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맛가루를 판매하는 전국의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 유통업체도 혼란에 빠졌다. 소비자들의 환불 요청이 빗발치고 있기 때문.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경찰 발표를 봐도 불량 원료가 쓰인 후리가케가 어떤 제품인지 알 수 없다 보니 제조사를 불문하고 무조건 환불해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당수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은 일단 매장에 진열된 맛가루 제품을 철수시키라는 지침을 내렸다. 서울 중랑구 면목동의 홈플러스 면목점은 제조사를 불문하고 기존에 판매하던 맛가루 29종 전부를 진열대에서 치웠다. 불량 채소 가루가 쓰였을 수도 있는 다른 품목 20여 개도 함께 철수시켰다. 송파구의 한 대형마트는 지난달 26일부터 일주일간 맛가루 판촉행사를 진행해 왔지만 이날 행사를 중단했다.

대형마트와 백화점 등은 자체적으로 불량 재료가 포함된 맛가루 제조사와 상품명을 파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유통단계가 워낙 복잡하다 보니 확인하는 것도 어렵다”고 말했다. 일부 유통업체는 특정 기업 2, 3개의 맛가루에 불량 재료가 들어간 것으로 추정하고 일단 해당 제품을 회수하고 있다. 국내의 맛가루 시장은 연간 600억 원 규모로 추정된다.

정상적인 재료를 사용해 온 맛가루 제조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맛가루 전문업체 푸른들은 3일 600여 통의 항의 전화를 받았다. 대부분 환불을 요구하는 전화였고 다짜고짜 욕설부터 퍼붓는 고객도 있었다. 이 업체는 “우리는 불량 채소 분말을 납품한 I업체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데다 식약처로부터 ‘위해요소 품질관리 우수식품 인증(HACCP)’까지 받은 곳”이라고 설명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회사 관계자는 “작년에 구매했거나 거의 다 먹은 제품을 환불해 달라는 요청도 제법 있었지만 환불해 줄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며 “하루 만에 수천만 원의 피해를 보는 셈이라 너무 억울하다”고 울상을 지었다.

인터넷 게시판에는 불량 재료가 포함된 제품이라며 여러 식품업체의 이름이 줄줄이 올라오고 있지만 그중 대부분은 불량 재료 포함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업체다. 경찰이 정확한 회사의 이름과 제품명을 공개하지 않는 바람에 맛가루를 취급하는 전체 업체가 비난의 화살을 맞게 된 것. 일부 인터넷 게시판에서 불량 재료 포함 맛가루 업체가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풀무원 관계자는 “우리 기업은 이번 사태와 전혀 관련이 없다”며 “이 같은 내용을 공문으로 만들어 발송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아동식품 판매사인 ‘우리애들밥상’은 경찰 발표 이후 전화가 빗발치자 사건을 수사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전화를 걸어 “제발 불량 재료가 사용된 맛가루 업체를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경찰로부터 “그쪽 업체는 명단에 없지만 전체 업체 이름을 모두 공개하긴 곤란하다”는 대답만 들었다고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경찰의 애매한 태도 때문에 애꿎은 중소기업만 죽어나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이 같은 시장의 혼란은 경찰의 성급한 수사 결과 발표가 일차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의 국정과제인 ‘4대 사회악’ 척결대상에 불량식품이 포함되면서 경쟁적으로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상황을 악화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서울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다른 경찰서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수사한다는 말을 듣고 어차피 알려질 거라면 우리가 지금 발표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2004년 불량 만두 파동 때 섣부른 보도가 한 기업을 망하게 할 수 있다는 걸 보고 불량식품 업체의 이름을 밝히는 게 조심스러워졌다”며 “맛가루 제조업체는 대부분 불량 원료인지 모르고 분말을 납품받았는데 업체의 이름을 노출시키면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혼란과 정상 업체들이 받을 수 있는 피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다.

오상석 이화여대 식품공학과 교수는 “제품명을 제외한 채 단속 결과를 성급하게 발표하면 소비자들의 불안과 시장의 혼란만 가중시킨다”며 “정부 당국이 일관된 기준을 정해 사회에 영향을 크게 미치는 불량식품의 경우 제품명을 일반에 신속히 공개하고 즉각 매장에서 철수하도록 제도와 매뉴얼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 조종엽·조동주·곽도영 기자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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