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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jpg


별도 바람도 나무도 친구가 되는 시간

코끝을 맴도는 나무향… 이마에 떨어지는 밤이슬

내가 자연이고 자연이 곧 나인 세상

즐겨라, 진짜를 맛보고 싶다면

[동아일보]

《 고전에 문외한이라도 몇 줄 기억에 남는 문장은 있기 마련이다. 

나에게는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가 몇 안 되는 글귀 중 하나다. 찾아보니 ‘맹자’에 나온다. 거칠게 옮기자면, 하늘의 때는 땅의 이로움만 못하고 땅의 이로움은 사람의 화합만 못하다, 정도다. 좋지 않은 기억력에도 이 ‘맹자왈’을 기억하는 이유는 살면서 경험하는 세상살이의 이치와 맞기 때문이다. 캠핑이라고 다를 것 없다. 캠핑도 천시보다 지리, 지리보다 인화다. 오해 없으시길, 덜 중요하다고 중요하지 않은 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천시, 지리, 인화 모두 중요하다. 》

   

하늘 천(天), 좋은 날씨가 우선

우선 천시(天時). 캠핑에 입문했다면 좋은 날씨를 고르는 게 가장 먼저다. 이 당연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7, 8월에 첫 캠핑을 떠나기 때문이다. 아마도 휴가철이고 아이들도 방학이라 시간을 내기가 쉽기 때문일 텐데,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더워도 너무 더우니까. 

야외에서 무엇을 해도 좋은 5월 중순 이후와 6월, 혹은 9월과 10월 초를 권한다. 5월 중순까지와 10월 중순 이후는 밤의 추위 때문에 잠자리 대비를 든든히 해야 하기 때문에 뺐다. 좋은 날씨를 골랐다면 캠핑 준비의 반은 끝난 셈이다.

천시의 유·불리는 캠퍼의 경력이나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선선한 바람과 좋은 볕을 즐길 만큼 즐겼다면 한번쯤 궂은 날씨에도 캠핑을 즐겨보길 감히 권한다. 이를테면 굵은 빗줄기. 우중캠핑은 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다. 치고 걷을 때야 곤혹스럽지만 (게다가 볕 좋은 날을 골라 장비들을 잘 말려야 하니 번거롭기까지 하다) 우중의 풍치는 곤혹스러움을 넘어선다.


캠핑2.jpg


땅 지(地), ‘언제’보다 ‘어디’가 더 중요

다음 지리(地理). 천시가 지리만 못하다는 건, 캠핑의 ‘언제’보다 ‘어디’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를테면 볕이 따가운 날은 나무가 많아 그늘이 좋은 곳을 찾고, 바람이 세면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에 텐트를 쳐야 한다. 

몽산포캠핑장에서 바다 보겠다고 바닷가에 텐트 쳤다가 바람에 휘청대는 폴을 잡고 밤을 지새운 적이 있다. 캠핑장에 대한 정보는 인터넷의 바다에 무한히 많으니 손품을 팔아야 한다. 취향에 맞는 캠핑장을 고르는 것이 중요한데, 캠핑 초보자에게는 산림청이 운영하는 자연휴양림 캠핑장이 좋다.

천시와 마찬가지로 지리 역시 사람 나름이다. 솔직히 편안한 캠핑은 뻔한 경험 이상을 선사하지 못한다. 언젠가 미시령으로 올라 진부령으로 내려온 백두대간 마지막 구간 신선봉 언저리 너덜지대에서 본 동해의 불빛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늘의 때와 땅의 이치를 어느 정도 경험했다면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게 캠핑의 참맛이다.

사람 인(人), 함께할 사람의 마음을 구하라

새로운 도전에 꼭 필요한 게 있으니 바로 인화(人和)다. 첫 캠핑에 나서 몽산포에서 나와 함께 폴을 잡고 밤을 지새운 형은 “캠핑은 원래 다 이래?”라며 웃었고 지금도 함께 캠핑을 다닌다. 너덜의 불편함과 함께 오징어잡이 불빛의 아름다움을 함께했던 선배는 이제 서로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지만 마음 속으로 좋아하는, 몇 안 되는 선배 중 하나다. 

몽산포의 그 새벽엔 함박눈이 내렸고, 신선봉의 저녁과 아침은 굵은 빗방울과 함께였으니 천시와 지리는 거의 최악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가끔 그때를 즐겁게 떠올리는 건 함께한 사람들이 좋았기 때문이다.

비단 새롭게 도전할 때뿐 아니라 시작할 때도 가장 중요한 건 인화다. 함께 떠나는 캠핑이니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야 캠핑이 즐거워진다는 식의 단순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캠핑은 아웃도어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행위다. 그러므로 기본적인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한 장비를 마련해야 한다. 알다시피 캠핑 장비는 생각보다 비싸고, 이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내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하다. 물론 이게 인화가 필요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아웃도어의 의식주는 아무리 편해도 불편하다. 비싼 고급 장비로 무장을 해도 인도어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따라잡을 도리가 없으므로 불편하다. 그 불편을 없애겠다고 장비를 보강하면 장비를 나르거나 치고 걷는 일이 중노동이 되기 때문에 불편하다. 안전을 해하지 않는다면 어느 정도의 불편함을 즐기는 게 현명하고, 이 현명함의 요체가 인화다. 

캠핑을 떠나고자 한다면 텐트보다 함께 갈 사람의 마음을 먼저 구하는 게 좋다. 캠핑을 떠나기 위한 장비 체크리스트는 위의 모든 것이 이뤄진 다음에 점검해도 늦지 않다.

분명히 하자. 캠핑은 즐겁고자 떠나는 거다. 장비를 테스트하기 위해서 혹은 다른 캠퍼들에게 장비를 자랑하기 위해서 떠나는 게 아니란 얘기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캠핑을 떠나기 위해 꼭 필요한 장비는 없다. 캠핑장 근처에서 식사하고, 캠핑장 안 운동장에서 놀거나 산책을 즐기고 오두막 같은 곳에서 자도 된다. 농담이 아니다. 좋은 텐트 제쳐두고 이슬만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자는 캠퍼도 많다. 그 동네에선 비바크라고 한다. 캠핑의 즐거움은 장비의 총액이나 개수와 별 상관관계가 없다.

장비는 하나씩 천천히 장만하자 


캠핑3.jpg


최소한의 장비가 ‘0’이라면 각자의 형편과 필요에 따라 장비를 하나씩 장만하면 된다. 일반적으로 텐트를 가장 먼저 산다. 이슬은 피해야 하니까. 그 다음이 버너와 코펠이다. ‘블루스타’와 냄비만 있어도 되지만 아무래도 캠핑용이 작고 가벼워 수납하기 좋기 때문이다. 

옷은 입고 있으니 이 정도만 있으면 의식주는 해결할 수 있다. 밤엔 어두우니 랜턴 하나 정도 추가. 끝이다. 날이 추워지면 담요와 이불이 필요할 테니 매트리스와 침낭이 추가된다. 나머지는 죄다 옵션이다. 

필수 장비로 여겨지는 타프, 테이블, 의자 등은 캠핑장을 잘 고르면 해결되니 천천히 장만해도 된다. 대신 읽을 책이든, 들을 음악이든, 볶을 커피든, 그릴 연필과 종이든 모처럼 넉넉하게 주어진 시간을 채울 ‘무엇’을 챙기는 게 좋다.

적당한 ‘균형점’을 찾아보자. 일단 텐트와 버너, 코펠은 사자. 첫 텐트는 리빙셸 없는 기본형으로 장만한다. 텐트에서 자려면 매트리스와 침낭이 필요한데, 매트리스는 ‘빨래판’으로 불리는 발포 매트리스가 싸고 효과도 좋다. 침낭은 집에 있는 얇은 이불을 챙기거나 삼계절용 침낭을 준비하면 된다. 버너는 고장 날 일이 거의 없으므로 부담 없는 가격대의 제품으로 하자. 초경량 제품은 비쌀 뿐 아니라 크기가 아주 작아 코펠을 올려놓으면 불안하다. 

코펠은 티타늄 말고 경질 코팅된 알루미늄 제품이면 충분하다. 가족이 4명이라면, 텐트나 코펠은 5인용이 좋다. 타프는 다음으로 미루고, 테이블과 의자도 미루자. 싼 걸 사면 오래 못 가고, 좋은 걸 사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차라리 화로대를 들이자. 목살 10근 정도는 구워야 초보 딱지를 뗄 수 있는데, 구이는 역시 화로다. 가볍고 작은 제품도 많다. 무엇보다 아직까지 화로는 캠핑 분위기의 화룡점정이다. 이 정도면 소형차 트렁크에도 충분히 넣을 수 있다.

처음 열 번은 무조건 휴양림으로

장소는 무조건 휴양림이다. 처음 10번은 휴양림으로 가자. 숲이 좋아 그늘이 있고, 덱이 있어 아쉬운 대로 테이블을 대신할 수 있다. 시설도 좋고 안전한 데다 무엇보다 가격이 싸다. 그 대신 예약이 시작되면 1, 2분 안에 마감되니 손이 빨라야 한다. 

바야흐로 캠핑이 대세다. 캠핑 가자고 해도 콧방귀만 뀌던 친구도 캠핑 장비 싸게 사는 방법을 묻는다. 하지만 남 따라서 가는 캠핑은 곧 ‘난 누구, 여긴 어디?’란 질문을 던질 것이다. 나는 미니 텐트 쳐두고 작은 의자에 앉아 꽃담요를 무릎에 덮고 책을 보며 웃고 있던 어느 할아버지의 표정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즐기자고 가는 캠핑이니 ‘남의 장단’ 아랑곳하지 말고 즐기자. 카이로스의 시간이 시작될 것이다. 아, 캠핑 예절은 다른 문제다.

글 서승범 월간 ‘캠핑’ 편집장, 사진 월간 ‘캠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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