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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SBS


- 노벨문학상, 누가 탈까 ② -


왜 고은 시인이 매년 노벨문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것일까요? 앞선 글 ‘도박사이트가 노벨문학상을 예측한다고?’에서 썼듯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선정 과정은 철저히 비밀리에 진행돼 별 정보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만, 역대 수상자를 통해서 ‘수상 조건’을 유추해 볼 수는 있습니다. 이 조건이라는 게 어디 명시된 건 절대 아니고 사후에 짐작해 본 것일 뿐이지만, 참고는 할 만합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그 작가의 작품이 많은 나라에서 번역 출판돼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국제적인 인지도를 얻게 되니까요. 그 중에서도 중요한 조건은 수상 시점 전에 그 작가의 작품이 스웨덴어로 번역 출판돼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물론 노벨문학상이 전 세계문학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지만, 작가가 스웨덴에 소개되지 않았을 경우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선정하는 스웨덴 한림원이 다소 부담스러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수상자 연령은 점점 고령화하는 추세로, 2005년 이후 수상자의 평균 연령이 70세입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의 자료를 봤더니, 1960년부터 2004년까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47명은 수상 이전에 평균 5권이 스웨덴어로 출간돼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최근 10년간 수상 작가의 경우 평균 6.6권이 스웨덴어로 출간돼 있었고요. 지난 1963년과 1979년 수상자인 그리스 작가 세페리스와 오디세아스는 작품이 스웨덴어로 번역되지 않았는데도 상을 받았던 전례가 있기는 합니다만, 최근 스웨덴 현지어 번역의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또 스웨덴 현지 8개 주요 출판사에서 작품을 출간한 작가가 상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스웨덴 현지 언론에서 서평 등으로 주목했던 작가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은 것도 비슷한 맥락입니다.

최근에 상을 받은 아시아 작가들의 예를 살펴보면 수상 이전에 이미 많은 언어로 작품들이 번역 출간돼, 전세계 문학전문가와 일반 독자들에게 친숙한 작가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국제 문단과 비평계에 인맥을 갖고 있어 외국 언론에도 노출 빈도가 높았고요. 노벨문학상 이외에도 국제적인 문학상을 이전에 받아 작품성을 세계적으로 공인 받은 경우가 많았습니다.

1994년에 수상한 일본 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경우는 수상 시점에 19개 언어 150종이 번역 출판돼 있었고, 1976년에 멕시코에서 방문교수를 한 경력이 있었습니다. 1989년에 벨기에 유로파리아 문학상, 1993년 이탈리아몬뎃로상을 받았습니다. 2006년에 수상한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은 수상 시점에 대표작 ‘내 이름은 빨강’이 35개국어로 번역돼 있었습니다. 1985년부터 3년간 미국 컬럼비아 대학 방문교수를 지냈고, 2002년 프랑스 최우수외국어문학상 등을 받았습니다.

즉 노벨문학상을 타려면 뛰어난 작품성은 기본이요, ‘번역’이 많이 잘 되어 있고, 국제 문단에서 인지도가 높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조건에 가장 근접해 있는 작가가 한국에서는 고은 시인으로 꼽힙니다. 황석영 이문열 작가의 작품도 한국 작가로서는 비교적 많이 번역돼 있는 편이라 후보로 거론됩니다. 현재 번역 출간됐거나 번역 출간 작업이 진행 중인 작품들을 작가별로 살펴보면 고은 시인은 17개 언어권 62종으로 가장 많습니다. 이문열 작가는 16개 언어권 59종, 황석영 작가는 15개 언어권 56종, 고 박완서 작가가 14개 언어권 49종입니다. 

그럼 스웨덴어 번역 출판 현황을 살펴볼까요. 스웨덴에 출간된 한국 문학작품은 16종에 불과합니다. 이 중 ‘만인보’ ‘화엄경’ 등 4종이 고은 시인의 작품입니다. 이문열 작가는 ‘젊은 날의 초상’ ‘시인’을 스웨덴어로 출간했고, 황석영 작가의 경우는 ‘한씨연대기’ ‘오래된 정원’이 출간돼 있습니다. 황석영 ‘손님’, 이문열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스웨덴 출간을 앞두고 있고요. 스웨덴 주요 일간지의 한국문학 보도 건수는 살펴보면 2002년부터 2012년까지 10년간 50건으로 집계됐습니다. 작가별로는 고은 시인이 20건, 황석영 작가가 15건, 이문열 작가가 10건입니다.

문학계 관계자들한테 들은 얘기인데요, 고은 시인은 해외 문학 행사에 자주 초청받고 국제 문단에서 인지도도 높습니다. 그의 시 낭송은 특유의 열정과 에너지가 묻어나서 해외에서도 인기라고 합니다. 또 불가의 수도자에서 작가로, 민주화 운동 투사로 살았던 그의 파란만장한 삶도 관심을 끌고요. 물론 고은 시인의 인지도가 높은 건 기본적으로는 작품성이 바탕이 된 것이겠지만, 이런 여러 요인들이 ‘플러스’로 작용한다는 얘기죠.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볼 때 만약에 한국인 수상자가 나온다면 그 주인공이 고은 시인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하는 겁니다. 물론 후보가 공개되지 않으니 고은 시인이 실제로 최종 후보에 들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서도 고은 시인을 자주 후보에 올려놓는 걸 보면 래드브록스에서 배당률을 결정하는 전문가나, 베팅하는 도박사들도 비슷한 생각인가 봅니다. 

그렇지만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앞두고 한국 언론의 취재 열기는 예년보다는 수그러진 편입니다. 지난 해 중국작가 모옌이 상을 받았기 때문에 연속으로 아시아 작가에게 상을 주겠느냐는 의견이 많거든요. 하지만 하루키는 같은 아시아 작가지만 가능성 높은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꽤 오랫동안 미국 작가가 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미국의 저명한 소설가 조이스 캐럴 오츠가 유력하다는 예측도 나옵니다. 조이스 캐럴 오츠도 몇 년 동안 단골로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지요. 이렇게 이런저런 추측이 나돌지만 ‘노벨문학상’은 발표 전까지는 ‘며느리도 모르는’ 겁니다.

한국인 수상자가 올해는 나올까 기대하다가 실망하는 일이 되풀이되다 보니, ‘노벨문학상 시즌’에는 번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옵니다. 최근 번역 작업이 꽤 활발하게 이뤄지고는 있습니다만, 우리의 번역 현주소는 아직도 이웃나라 일본이나 중국에 비하면 많이 미흡합니다. 한국문학번역원이 해외에 번역된 한국 책들이 얼마나 있나 조사해 봤더니 3천 3백여 종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웃 나라 일본은 2만 종 이상이 번역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실 중국이나 일본 문화는 일찍부터 서양에 알려져서 한국보다 100년 이상 앞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해외에 중국학, 일본학 연구자들이 많고, 자연스럽게 중국문학 일본문학 전문가와 번역가들도 많이 배출됐습니다. 일본은 1960년대부터 국가적 차원에서 해외의 일본학 연구를 적극적으로 지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해외에서 한국학 연구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건 최근이고, 한국 문학 전문 번역가도 별로 많지 않습니다. 한국문학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겁니다.   

해외에 가보면 아직도 한국이 중국이나 일본과 같은 언어, 문자를 쓰고 있는 줄 아는 사람들이 많을 정도로 한국 문학은 물론이고 한국이란 나라에 대한 인지도가 아직 낮은 수준입니다. 최근 한류와 맞물려 한국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기는 합니다만, 아직은 갈 길이 멉니다. 전문가들은 그래서 ‘왜 중국 일본은 상을 타는데 우리는 못 타느냐’고 단순 비교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합니다. (일본에선 1968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1994년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했고, 중국은 프랑스 국적인 가오싱젠(2000년)에 이어 지난해 모옌이 수상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번역이 덜 되어서 한국에서 아직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안 나오고 있다고 분석한다면 근본적인 문제를 간과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얘깁니다. 번역 작업을 오래 전부터 지원해온 대산문화재단의 곽효환 사무국장은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우리는 90년대 말부터 역설적으로 창작 환경이 열악해졌다고, 지금 작가는 좋은 작품을 따라 읽는 독자층이 무너진 상태에서 혼자 작품을 쓰고 있는 거라고요. OECD 꼴찌 수준인 독서량 통계도 이런 현실을 반영합니다.

자국 독자들도 안 읽는 책을 해외 독자들이 어떻게 읽겠어요. 한국에서 많이 읽혀야 해외 출판사도 관심을 갖고 번역 출간에 나서게 되지 않겠습니까. 한 작가는 ‘평소엔 책 한 권 읽지도 않다가 노벨문학상 시즌만 되면 왜 우리 나라는 상을 못 타냐고 질타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답니다. 그러고 보면, 한국인들이 하도 경쟁이나 순위 매기기에 익숙해지다 보니 노벨문학상도 무슨 국가별 대항전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문학상 시즌’이 돌아와, 2005년부터 조금씩 수정되면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한국인 수상자가 나올 경우에 대비한’ 기사를 다시 고쳐 쓰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많아져서 글이 길어졌습니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10월 10일 목요일 한국 시각으로는 밤 8시쯤에 발표됩니다. 누가 상을 받든지, 문학에 대한 일반의 관심을 좀 더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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