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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흑룡강성의 농촌부락

 

 4. 인간 경매

 

우리를 태운 승합차는 밤새 달려 다음 날 오전 아홉시경에 흑룡강성 오상시의 한 농촌부락에 도착했다. 오상시는 산지가 대부분인 연변지역과 달리 무연한 벌이었다. 오상을 중국어로는 "우창"이라고 말한다. 흑룡강성 오상시는 연변과 달리 대부분 한족이고 조선족은 아주 적다. 끝없이 펼쳐진, 무연한 벌에 중국인들의 부락들이 널려 있는데 그중에 조선족들이 모여사는 부락도 몇 곳이 있다.

 

오상시에서 가까운 대도시는 하얼빈이다. 오상시에서 기차를 타고 세시간을 가면 하얼빈 이다. 우리는 차안에서 인신매매범들이 지껄이는 소리를 듣고 그들이 전에도 하얼빈과 오상시 근처에 많은 북한여자들을 팔아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들은 작년에 팔려간 누구는 아이를 낳았고 또 누구는 도망쳤다는 이야기를 했다.

 

인신매매범들은 오상시와 그 근처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다. 몇 년 동안 북한여자들을 데려다 팔아먹으면서 알게 된 사람들이었다. 인신매매범들은 오상시에 도착하여 하루밤을 자고 다음 날부터 우리를 차에 싣고 농촌부락들을 돌아다녔다. 돌아다니며 우리를 팔았다.

 

인신매매를 당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치욕이었다. 사람이 곧 물건으로 되어버리는 것이 인신매매이다. 자신도 모르게, 우리들 매 사람에게는 가격이 붙어 있었다. 나이와 신체조건, 얼굴생김에 따라 가격이 달랐다. 놈들은 부락들을 돌아다니며 우리를 세워놓고는 사람들과 가격을 흥정하군 했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은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그 곳에는 인신매매범들을 도와주는 짝패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친척이나 친구들의 집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고는 몰래 근처 사람들을 불러들이군 했다.

 

북한에서 시집을 갔던 두 아줌마는 첫 날에 팔렸다. 나이가 많은 아줌마들은 가격이 쌌기 때문이었다. 연사군에서 온 아줌마는 오천오백원(당시 환율로 700달러)에 팔렸고 회령에서 온 아줌마는 6천원(당시 환율로 737달러)에 팔렸다. 돈을 주고 그들을 산 사람들은 중국인(한족) 농민들이었다.

 

가난에 쪼들린듯, 아니면 힘겨운 일에 부대낀듯 살색이 거친 중국인 농민들이 아줌마들을 데려간 뒤 인신매매범들은 낄낄 웃으며 이런 말을 했다. "저 놈들은 우리가 아니면 평생 여자맛을 보지 못했을 놈들이다" "우리가 조선여자들을 데려오지 않으면 저놈들은 평생 홀아비로 살아야 한다"

 

후에 들은 얘기지만 중국사회에는 성비의 불균형 현상이 심하다. 나는 후에 불균형적인 성비현상을 실은 중국신문을 봤는데, 거기에는 15세~45세 사이의 중국 인구중 남성은 여성들보다 4천만명이 더 많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다른 나라들 처럼 중국도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돈이 없고 능력이 없는 남자들은 결혼하기가 어려운 곳이 중국사회라고 했다. 그런 관계로 중국의 농촌들에는 장가못간 늙은 총각들과 이혼당한 홀아비들이 특별히 많다. 그들에게 팔려간 북한여자들은 아마 수천~수만명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인신매매범들은 남은 우리들, 세명의 처녀 가격은 비싸게 불렀다. 나이가 어린 처녀라는 이유로 한 사람당 중국돈 1만원(당시 환율로 1.240달러)씩 불렀다. 중국농민들에게 1만원은 큰 돈이었다. 농민들이 1년동안 뼈빠지게 일해도 1만원을 벌기가 어렵다. 그래서 우리를 사려는 사람은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여러사람이 찾아 왔지만 그들은 인신매매범들과 가격을 흥정하다가 너무 비싸다고 투덜거리며 돌아갔다.

 

인신매매범들은 우리들에 대한 감시를 잠시도 소홀이 하지 않았다. 우리가 화장실에 가도 꼭 따라다녔고 밤에는 속옷만 입히고 겉옷은 벗겨 자신들의 머리맡에 두군했다. 그 속에서도 무산언니는 도망쳤다. 우리 세명 중 나이가 제일 많은 무산언니는 연약한 겉모습과 달리 대담한데가 있었다.

 

우리가 오상시에 도착한지 4일째 되는 날이었다. 그날 저녁 여관(여관주인은 여자였는데 그는 인신매매범들과 잘 아는 사이였다)으로 돌아온 인신매매범들은 술판을 벌였다. "장사"도중에는 일을 그르칠까봐 술을 절대 마시지 않는다는 그놈들이었지만 아마 우리가 빨리 팔리지 않는 것이 짜증이 난다는듯 그 날은 초저녁부터 술판을 벌였다.

 

그 놈들은 술을 어지간히 마신뒤 취기가 오르자 음탕한 본색을 나타냈다. 카드를 놀며 이긴 놈이 먼저 마음에 있는 여자를 선택하는 방법으로 우리들을 한 명씩 차지하고는 자신들의 방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 기회를 이용하여 무산언니는 자신을 끌고 방안으로 들어간 놈에게  술을 잔뜩 먹이고 도망쳤다. 무산언니는 자신의 겉옷을 찾아입은 것은 물론 그 놈의 돈지갑까지 훔쳐가지고 달아났다.

 

다음 날, 놈들은 "잡으면 죽여버린다"면서 악에 받쳐 무산언니를 찾아 돌아쳤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있은 것은 나와 청진언니(23살)였다. 우리 둘은 7일만에 팔렸다. 청진언니는 오상시 시내의 한 유흥업소 사장이 사갔고 나는 농촌에 살고 있는 중국농민(한족)이 사갔다.

 

나를 데려간 사람은 나이가 마흔 여섯살이었다. 18살이었던 나와는 무려 28년 차이가 나는 남자였다. 그는 가정을 꾸리기 위해 나를 데려 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인신매매범들과 이미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였다. 인신매매범들이 수군 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그는 1년 전에도 북한여자를 한 명 사갔는데 6개월만에 다른 사람에게 팔아버렸다고 했다. 그는 돈을 주고 북한여자를 산뒤 한동안 욕구를 채우고는 다시 팔아버리는 변태였다. 나는 그 중국인 농민의 집에 팔려간 후 석달만에 도망쳤다.

 

               [계속]

 

          탈북자 신영희 (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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