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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일보
옛 소련의 핵실험 장소였던 카자흐스탄 동북부 세미팔라틴스크의 초원지대에서 한 연구원이 방사능 오염 수치를 측정하고 있다. ●panoramio 홈페이지

옛 소련의 핵실험 지대 희망의 새싹이 꿈틀꿈틀

카자흐 세미팔라틴스크 40년간 핵실험 450여회 실시… 1991년 폐쇄 후 농업금지

4년 전부터 동·식물 기르는 실험… 연구진 "지역 80%는 식용 가능"

방사능 생태농업 회의론은 여전 

카자흐스탄 북동부 도시인 세미팔라틴스크(Semipalatinsk). 큰 강을 끼고 있는 풍요로운 초원지역이었던 이곳은 옛 소련시절 핵실험장이란 청천벽력의 운명과 맞닥뜨려야 했다. 수십 년간 수많은 핵실험을 거친 이 땅은 이제 모든 면에서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 1만8,100㎢에 달하는 초원에선 사람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동물과 새들조차 직관적으로 이 곳에서 멀리 떠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듯 하다. 핵실험의 잔해인 수많은 분화구 모양의 웅덩이와 곳곳에 널브러져 있는 깨진 보드카 병들이 핵실험의 참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지역 주민들은 보드카가 방사능 노출에 따른 피해를 줄여준다고 믿는다. 이곳을 찾는 방문객은 흙을 밟기 전에 신발에 보호용 비닐 커버를 씌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야 한다.

죽음의 땅에서 솟아나는 생명

그러나 이 오염된 땅의 한 자락에선 뜻밖의 생명이 자라고 있다. 샛노란 해바라기와 옥수수, 그리고 통통하게 살이 붙은 양들이 커가고 있다. 카자흐스탄 국영 기관인 '방사능안전생태연구소' 직원들이 가꿔 온 '실험 농장'이다. 방사능과 환경 간 의학ㆍ생물학적 상호 작용을 파악하는 것이 이 연구의 목적이다. 오염된 땅으로부터 방사능 전이를 측정해 수확물을 먹을 수 있는지, 여기서 자란 동물의 고기와 우유 등은 안전한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 농장은 "핵으로 오염된 땅에서 음식물을 얻을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한 시도라고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정의 내린다.

연구원들은 세계에서 가장 핵 오염도가 심한 이곳에서 방사능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고, 다른 나라의 오염 지역에서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길 고대하고 있다. 수석연구원인 자나트 바이가지노프는 "우리는 이 지역 대부분이 깨끗하다고 생각하지만, 주민들에게 되돌려주기 전에 이곳이 안전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미팔라틴스크의 핵 유산은 1947년 옛 소련 '원폭 프로젝트'의 책임자였던 라브렌티 베리아가 이곳을 핵 실험장으로 선택하면서 비롯됐다. 1949년부터 40년간 무려 450회가 넘는 핵 실험은 토양을 오염시켰고, 기형아 출산 및 암 발병률 증가를 가져왔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1991년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은 이 지역을 폐쇄하고 농업을 금지시켰다.


실험 농장은 4년 전 지역 주민들의 안전성 조사 요구로 시작됐다. 현재는 10명의 연구진이 이곳에서 동ㆍ식물을 직접 기르며 방사능 오염도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실험은 농장뿐만 아니라 핵실험이 실시되지 않은 인근 다른 지역에서도 동시에 이뤄지고 있다.

얼마 뒤 연구진은 이 지역이 설익은 가정에 근거해 과도하게 봉쇄돼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사전 조사결과에 따르면 이 지역 전체의 약 80%가 식용 가능한 동ㆍ식물을 기를 수 있는 것으로 연구소 측은 판단하고 있다. 연구원들은 이곳에서 생산된 야채와 고기를 먹으며 자신들이 갖고 있는 확신을 증명하고 있다.

끝나지 않은 논쟁

학계에선 여전히 방사능 생태 농업을 둘러싼 안전성 논란이 한창이다. 일부 학자들은 체르노빌 원전 주변의 농산물은 적어도 200년 이상 식용이 금지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세미팔라틴스크 프로젝트'가 학계에서 논란이 되는 이유는 이 곳 토양 내 플루토늄 등 초우라늄 농도가 유난히 높기 때문이다. 방사능 오염물질 중에서 세슘이나 스트론튬 등은 30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반감기를 가지고 있지만 세미팔라틴스크에서 추출되는 플루토늄-239는 반감기가 2만4,000년에 달한다. 

'방사능안전생태연구소'의 소장인 세르게이 루카셴코는 "초우라늄 물질의 동ㆍ식물 전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아직 없다"며 "모든 사람들이 일상 생활에서 소량의 방사능에 노출돼 있는 만큼 이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방사능 노출이면 안전하게 생활할 수 있는지 측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곳 실험 농장의 연구는 다른 오염 지역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겪은 일본 과학자들은 최근 후쿠시마 인근 토양에서 재배된 감자와 양배추 등의 방사능 오염 정도를 측정했다. 그 결과 식물 샘플에선 측정하기 힘들만큼 극소량의 방사성 세슘이 검출됐고, 일부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당국에 후쿠시마 지역의 농업 재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연구에 대한 회의론도 적지 않다. 토모코 나카니시 도쿄대 교수는 "서로 다른 방사능 동위원소와 농사 방식, 그리고 방사능에 오염된 다양한 종류의 작물들을 일반화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영국 셰필드 대학의 핵화학물질 전문가인 닐 하얏트도 비슷한 견해를 내놨다. 그는 "세미팔라틴스크는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와는 자연환경이나 오염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접근 방식 역시 달라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 톰스크 공과대학 교수인 레오니드 리흐바노프는 지난해 영국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방목 등을 위해 세미팔라틴스크 지역을 개방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실수"라며 "플루토늄이 생태계로 들어올 경우 우리의 자녀와 후손들의 건강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FP는 "세미팔라틴스크의 실험 농장 연구원들은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하는 한편 여전히 모든 증거가 남아 있는 파괴적인 역사와도 투쟁해야 하는 셈"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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