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9.24 18:54

다 소용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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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뜨니 그녀가 안보인다.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영문을 모르지만 분명한 건 그녀가 옆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녀가 어떻게 없어진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어디에 가서 찾아야 할 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녀 없이 세상을 살아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자신이 없다. 

자신이 한 마리 벌레로 변한 느낌만이 온몸을 칭칭 휘감고 있을 뿐이다. 

그때 어디선가 “여봇!! 어서 내려와 요강 치워요!!~~” 

귀청 떨어지는 소리에 C씨는 벌떡 꿈에서 깨어났다. 

등에는 식은 땀이 흥건히 배었다.


아내의 눈물


K씨는 기다리던 남편이 도착할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오지 않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에토비코에 아들을 데려다 주고 401 고속도로를 따라 돌아오는 남편으로부터 

“이제 15분 정도 있으면 도착할꺼야”라는 기별이 왔는데 도착 예정시간보다 20분이 

훨씬 넘었는데 남편의 인기척은 없다. 설거지를 하면서도 남편의 빨간색 밴이 들어오나 

고개를 빼들고 연신 창문 밖을 내다보지만 기다리는 차는 나타날 기미조차 없다. 


고속도로를 달릴 때 전화 받으면 위험하다는 것을 알기에 될 수 있으면 전화하지 않는데 

지금은 도저히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K씨는 마침내 남편 셀폰으로 전화벨을 울렸다. 


“삐리리링~~ 삐리리잉~~....” 


신호음이 열 번 정도 울렸는데도 수화기 저편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다. 

대신 낭랑한 여성 톤의 컴퓨터 목소리가 영어로 


“지금 거신 전화번호는 통화가 안되니 음성 메시지를 남겨주세요”라는 자동응답이 나왔다. 


하도 여러 번 듣는 내용이라 정확하게 들리는 영어 가운데 하나다. 

K씨는 ‘삐익’하는 소리와 함께 남편 셀폰에 음성 메시지를 남겼다. 


“여보. 무슨 일 있는 거예요? 불안해 미치겠으니 어서 연락 좀 해줘요” 


시간이 흐르는 것과 비례해서 K씨의 불안과 초조는 제곱으로 불어났다. 

K씨는 이젠 앉아 있을 수도, TV를 볼 수도 없을 정도로 공포감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불안감이 증폭할수록 K씨의 손가락에는 불이 났다. 

1분 간격으로 남편 셀폰에 무려 12번이나 전화를 걸었다. 

아무런 응답이 없는 남편이 야속했다가 화가 났다가 마지막엔 절망감으로 바뀌었다. 

제발 아무런 일이 없으면 좋으련만, 소식을 알 수 없으니 미칠 것만 같았다. 

남편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제발 전화 좀 해줘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어요..” 


백약이 무효란 건 이럴 때 딱 들어맞는 말이다. 

남편의 도착 예정시간이 1시간 이상 초과되자 K씨는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질 않았다. 

불현듯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했으리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어떡해..  남편이 무슨 변고를 당한 게 틀림없어... 

하나님, 제발 남편을 살려주세요. 흑 흑 흐으윽~~~” 


K씨는 병든 아버지께 드릴 점심 식사를 차리다 말고 

부엌 구석에 쭈그리고 앉아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남편 없는 세상을 혼자 살아갈 엄두가 나질 않았다. 


바로 그때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남편이 아무런 내색도 않고 들어왔다. 

얼굴과 손은 흙투성이가 된 채...  


K씨는 순식간에 절망의 나락에서 소망의 언덕으로 건져 올려지는 감격을 맛보았다. 

동시에 연락 한번 주지 않은 남편에 대한 원망이 볼멘 소리로 폭발돼 나왔다. 


“도대체 어디 갔다 이제 오는거야아아아!!!!!!~~~~ 죽은 줄 알았자나!!!!!!!~~~~ ” 


남편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차고에 주차하고 뒷마당에서 모종을 심느라고 시간이 걸렸어. 

미안해서 어쩌냐. 근데 내가 죽었다고 생각하니 어떤 마음이더니?”라고 물었다. 


 K씨의 입에서 반자동적으로 튀어나온 말은...  


“다 소용없어”


남편의 눈물


C씨는 MRI 기계 위에 누워있는 가녀린 아내를 보자 가슴이 미어졌다. 


연전에 대형 교통사고로 어깨를 심하게 다친 아내를 데리고 병원에 다닌지 벌써 2년째다. 

처음엔 별 것 아닌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아내의 고통은 점점 심해져 갔다. 

자다가도 갑자기 지르는 아내의 비명소리에 C씨는 꿈속을 헤매다가도 잠에서 벌떡 깬다. 


통증을 호소하는 아내의 어깨와 팔다리를 비몽사몽간에 주물러주다가 다시 잠에 곯아떨어진다. 

의사들도 잘 고치지 못하는 아내의 고통을 산삼이라도 캐서 고쳐주고 싶건만 그러기엔 

시간과 능력이 너무 부족해 안타깝기만 하다. 


아내는 왠만하면 그냥 참고 지내지만 이번만큼은 너무 아파서 견디기 힘들어 했다. 

가정의와 스페셜 닥터를 거쳐 종합병원 진단의학과 MRI 기계 통 속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니 

눈물이 핑 돌았다. 


드럼통보다 큰 MRI 기계에 비해 아내가 너무 작아 보였다. 

알레르기 방지약을 먹었지만 조사용 염색제를 어깨에 주사할 때 아내의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굉장히 아픈가 보다. 

복도에서 기다리는 C씨는 행여나 무슨 일이 생기는지 걱정되어 

귀를 바짝 세우고 미세한 소리라도 들어보려 애를 썼다. 


조금 전에 담당 외국인 여의사가 와서 각서에 싸인하라고 한 것이 영 마음에 걸렸다. 

각서 내용을 찬찬히 읽어볼 상황은 아니었지만 가만히 생각하니 

만의 하나라도 불상사가 발생해도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내용인 것 같았다. 

MRI 찍는데 각서까지 쓰는 걸 보면 위험한 장치임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담당 의사가 바쁘게 움직이는가 싶더니 

아까 상담한 간호보조원이 달려오고 하는 모습이 

필시 뭔가 아내에게 문제가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C씨는 이러다가 담당의사가 조용히 보호자인 C씨를 보자고 하면 어쩌나 하는 공포에 휩싸였다. 


의학 드라마를 많이 봐서 그런지 병원 의사들 발걸음만 보면 오만 가지 상상이 다 든다. 

빼꼼히 열려있는 문틈으로 눈을 감은 채 두려움에 눈알을 움직이며 누워있는 아내가 보였다. 

파란색 병원 가운을 입고 누워있는 모습에 문득 


“아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엄습해 왔다. 


이대로 아내가 죽는다면 이 세상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아내를 보고 소리 지르고 악을 썼는데 

막상 아내가 없다고 생각하니 너무 기가 막혔다. 


아내 없이 산다는 건 C씨에겐 영혼이 없이 육체만 간신히 움직이는 

좀비와 다름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오, 하나님! 제발 아내를 지켜주세요. 저는 아내 없인 살 수 없어요” 


C씨는 병원 복도에 서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 드렸다. 

교회 다니면서도 이렇게 필사적으로 기도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불안한 마음에 C씨는 화장실 가려고 잠시 나온 담당 의사를 붙잡고 


“별 문제 없는거요?”라고 물었다. 

의사는 “문제 없습니다. 아주 좋아요”라며 안심시켜 주었다. 


안도의 한숨을 깊이 몰아쉬는 C씨의 입에서 새어나온 말은... 


“다 소용없어”


다 소용없어


MRI 촬영을 무사히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K씨-C씨 부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돈밸리파크웨이의 우거진 녹음을 바라보며 무언의 마음을 서로 나누었다. 

아내를 위해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에 

C씨는 곧바로 건강검진센터로 가서 피와 소변 검사를 했다. 

아내와의 건강한 삶을 지탱하기 위해 당장 실천했다. 


오전 내내 병원 일정으로 녹초가 된 K씨-C씨 부부는 배가 너무 고팠다. 

가끔 가던 음식점에서 C씨는 늘 하던 대로 짜장면 셋트 메뉴를 주문하려고 했다. 

그런데 아내 K씨는 삼계탕이 먹고 싶은 눈치다. 

짜장면 세 그릇 보다 삼계탕 한 그릇 값이 더 비싼 메뉴판을 본 C씨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C씨는 잠시 망설이다가 용단을 내렸다. 


“반계탕은 가격과 양도 적정하고 맛있을 것 같으니 이걸로 주세요. 나는 짜장면 주시고요” 


호기있게 주문을 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병원에서 기진맥진해서 나온 아내를 위해 

뭐든지 먹고 싶은 걸 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씨는 앞으로 아내를 위해서는 절대로 구두쇠 영감 노릇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왜냐하면 아내가 없다면 세상 모든 행복이 

더 이상 행복한 모습으로 다가서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가 있다면 세상의 모든 조건을 다 잃어도 행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C씨는 이제부터 아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이다.


C씨가 마음 속으로 다짐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내가 먹고 싶은 걸 살 때 군소리 하지 않는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루에 한 번은 한다. 

부부싸움 해도 반드시 한 침대에서 잔다. 

아내가 교회 가자고 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교회에 같이 달려간다. 

예배 시간에 절대로 졸지 않는다. 

만일 졸리면 그 자리에서 잠이 달아날 때까지 일어서 있는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었을 때와 밤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 꼭 아내와 손잡고 10분 이상 기도한다. 

성경공부를 이 닦듯이 한다. 

하나님만을 바라본다. 


왜냐하면 하나님 없으면 다 소용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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