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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타향의 설움 

 

처음 중국에 갔을 때 나는 모든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너무도 궁핍한 북한과는 전혀 다른 곳이 중국이었다. 사람들은 쌀밥과 고기를 마음대로 먹었다. 그래서인지 모두가 몸집이 좋았다. 북한식으로 이야기하면 남자들은 모두가 당 간부 같았고 여자들은 모두가 식당책임자 같았다.

 

내가 팔려간 조선족 주인도 몸집이 좋았다. 나이가 50대 중반인 그는 인상도 좋았다. 내가 도착한지 이틀이 지난 2002년 5월 22일(나는 아직도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다)조선족 주인은 푸근한 웃음을 얼굴에 담고 이런 말을 했다.

“너 우리 집에 있다가 중국 사람한데 시집가라. 조선에서 맨 날 굶으며 살겠냐. 중국 사람에게 시집가면 횡재하는 거지.”

 

당시 나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나는 시집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하지만 내가 아버지 때문에 팔려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인의 말에 아무런 반발도 하지 못했다. 내가 바라는 것은 그저 조선족 주인이 아량을 베풀어 빚진 돈을 탕감해주거나, 식당 같은데서 돈을 벌어 빚을 갚을 기회를 주는 것이었지만 그 말을 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면 조선족 주인이 화를 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나는 조선족 주인을 “큰 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는 나의 큰 아버지와 나이가 같았다. 내가 “큰 아버지”라고 불러주면 조선족 주인이 혹시 나를 불쌍하게 생각해주지 않겠는지, 혹은 어른의 아량 같은 것이라도 생겨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앞세우며 나는 그에게 고분고분했고 착해 보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부질없는 짓이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한 달도 걸리지 않았다. 내가 주인집에 온지 한 달이 거의 되어오는 어느 날 이었다. 그 날 나는 주인내외와 함께 산골짜기의 강냉이 밭 김매는 일을 했다.

 

그 날은 몹시 더웠다. 땀을 흘리며 김매기를 하다가 밭머리에서 휴식할 때, 조선족 주인은 넌지시 이런 말을 했다. “넌 조선에서 굶으면서 살았다는데 몸은 통통한 게 보기 좋다”

 

그 말에 주인마누라가 땀에 젖어 티셔츠가 찰싹 달라붙은 나의 몸을 흘겨보며 대꾸했다.

“열여덟 살이면 맹물만 마셔도 살이 오를 나이지”

 

그때부터 나는 예감이 불안했다. 땀에 젖은 티셔츠에 감긴 나의 몸을 바라보는 조선족 주인의 눈길에서 탐욕 같은 것이 어른 거렸기 때문이었다. 해가 서산에 기울고 주인마누라가 여느 때처럼 저녁밥을 지으러 먼저 마을로 내려간 후, 밭머리에서 휴식하던 조선족 주인은 멀리 떨어져서 열심히 김매기를 하는 척하는 나를 소리쳐 불렀다.

“야, 저기 가서 물을 가져오라”

 

그때부터 나는 당황했다. 갑자기 두뇌가 마비된 듯 머릿속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불안에 옴 몸을 떨며 물통을 조선족 주인에게 가져다주었는데 그는 물통을 집는 것이 아니라 나의 팔을 덥석 움켜잡았다.

 

그렇게 나는 낯선 중국의 산기슭에서 50대 농민에게 열여덟 살의 성을 빼앗겼다. 그날 나는 반항도 하지 못했다. 그저 육중한 몸에 짓눌려 아픔과 부끄러움에 몸을 떨었다. 일이 끝난 후에도 두뇌가 마비된 듯 나의 머릿속은 멍청해 있었다. 그저 기계적으로 옷을 주어 입고 조선족 주인을 따라 마을로 왔다.

 

그 날 밤, 오랫동안 마당에 쭈그리고 앉아 있다가 방안에 들어갔는데 그제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집 옆의 개울로 나갔다. 차거운 개울물에 들어가 피가 흘러내린 허벅지를 씻으며 오랫동안 울었다.

 

그날 밤, 나는 뜬눈으로 밤을 샜다. 그날부터 나는 사람을 죽이는 상상을 해보기 시작했다. 이불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칼로 조선족 주인을 찔러 죽이는 상상을 열 번도 넘게 했다.

 

하지만 당시 나의 나이는 열여덟 살이었다. 밤새 이불속에서 눈물을 흘리며 집주인을 칼로 찔러 죽이는 잔인한 상상을 했지만 다음 날 아침에는 집주인이 무서워 몸을 옹송그렸다.

 

3일 후, 나는 다시 조선족 주인에게 겁탈 당했다. 그 날은 종일 비가 왔다. 비가 와서 일을 못하게 되자 주인마누라는 이웃동네의 친척집에 갔는데 그 틈을 타서 조선족 주인은 나를 겁탈했다.

 

그 날 나는 팔을 훔켜잡는 집주인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아저씨, 우리 큰 아버지가 아저씨와 나이가 같아요. 제발”

그러자 그는 화를 벌컥 냈다.

“이걸 그저 콱”

 

악에 받친 듯 희번뜩이던 잔인한 그의 눈길이 느닷없이 부엌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 부엌 문가를 바라보던 나는 더 이상 반항하지 못했다. 부엌 문가에 비스듬히 세워둔 낫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집주인이 그 낫으로 나를 찍어죽일 것 같았다.

 

그 날부터 나는 조선족 주인의 어린 성노예가 되었다. 그는 마누라가 없을 때면 집에서, 그리고 밭머리와 숲 속에서, 서슴없이 옷을 벗기고 나를 겁탈했다. 나는 조선족 주인이 무서웠다. 내가 거절하면 그가 무섭게 횡포해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에게 고분고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드러난 야욕과 함께 잔인함도 더 이상 숨기지 않았다.

“너 가겠으면 네 애비가 가져간 돈을 갚고 가라. 도망칠 생각은 하지도 말라”

당시 열여덟 살이었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혼자서 우는 것뿐이었다. 울면서 나를 팔아먹은 아버지를 저주했다.

 

그렇게 석 달이 지나간 그해 9월 어느 날. 집주인은 산기슭에서 나를 겁탈하다가 버섯을 뜯으러 산에 갔다 오던 마누라에게 들켰다. 그날 나는 주인마누라의 물푸레나무 지팡이에 죽도록 맞았다.

 

조선족 주인과 마누라는 집에 돌아와 이틀 동안 싸웠다. 부시고, 소리를 지르며 싸우다가 이틀만에야 조용해졌는데 그때 내뱉은 마누라의 말이 더 기가 막혔다.

 

“하긴 나그네(남편)가 다른데 가서 바람을 피는 것보다야 낫지”

나는 꽃 같은 어린 나이에 수시로 조선족 주인에게 겁탈을 당했지만 그 마누라는 그것을 두고 바람피웠다는 말조차 하기 싫어했다. 그들에게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팔아먹거나, 살 수 있는 자그마한 한 마리의 동물 이었다.

 

         [계속]

 

탈북자 신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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