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 기업가

10대 부호 와이어하우저 (1)

by 유동환 posted Aug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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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부호 와이어하우저 (Frederick Weyerhaeuser) (1)





역사를 만드는 세계 100대 부호들 (28)

판매능력, 성실성, 책임성 인정받아 고속승진
불황에 문 닫은 목재회사를 인수, 악전고투 살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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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인 강 계곡의 농촌에서 태어난 와이어하우저는 여섯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부모의 포도 재배업을 도왔다. 열두 살에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학교를 그만두고 풀타임으로 일하며 책임감과 성취욕을 키웠다. 1852년 18세의 나이에 그는 미국으로 먼저 이주한 누이와 숙모를 따라 뉴욕을 거쳐 펜실바니아 서부지역에 정착했다. 수중엔 무일푼이었지만 그에겐 신대륙의 큰 꿈이 있었다. 그는 곧 월 4달러를 받고 양조장에서 잡일을 하다가 월 13달러를 주는 농장 일로 옮겼다.


1856년 락 아일랜드 (Rock Island)로 이사하고 미드 스미스 앤드 마쉬 (Mead, Smith and Marsh) 제재소에 야간경비원으로 취직했다. 취직 이틀 후 야간 경비원들이 모두 해고당했지만 경영주는 그의 능력을 감지하고 그에게 목재생산량과 출고량을 기록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어느 날 목재를 사려는 농부들이 들어와서 판매원을 찾았다. 판매원은 마침 부재중이었다. 판매를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던 그는 다른 공장으로 가려는 농부들을 붙잡고 그들이 필요한 목재를 판매했다. 그는 60달러라는 큰 금화를 받아 점심을 끝내고 돌아오는 판매원에게 건네주었다. 이 사실을 안 마쉬사장은 그의 판매능력에 덧붙여 그의 예리한 판단력과 책임감을 인정하여 그를 지역판매 사업부장 자리로 승진시켰다.


그해 12월 이 회사는 코울벨리에 목재판매소를 개점하고 그를 소장으로 임명했다. 그러나 1857년 찾아온 세계적인 불황 (the ‘Panic of 1857’)은 미국의 극심한 경제침체를 초래하여 회사는 이듬해 파산했다.

와이어하우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자기가 책임 맡았던 코울벨리 목재판매소를 구입했다. 또한 매부인 덴크만 (F.C.A. Denkmann)과 회사의 장비와 재고를 3,500 달러에 구입하고 와이어하우저 앤드 덴크만 (Weyerhaeuser & Denkmann) 목재판매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재고품을 정리하여 1859년에는 3천 달러, 1960년에는 5천 달러의 순익을 냈다. 그러나 심한 불황 중에 충분한 자본금 없이 사업을 시작한 그는 가축, 농산품 등으로 고객들과 물품교환까지도 환영하면서 재고량을 회전시켰다. 즉 돈이 없는 농부들에게 목재를 주고 대금을 계란, 소고기, 돼지고기, 야채 등으로 받았다. 그는 이런 농산품으로 목재공장에 줄 돈을 대신했다. 돈이 귀한 때에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는 사업을 계속 번창시켜 3백만 입방피트의 목재판패량을 수년 만에 1천만 입방피트로 올렸다. 그는 목재뿐 아니라 다른 사업에도 큰 관심을 두고 밀가루 공장도 구입하고 제재소도 사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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