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코넬리어스 밴더빌트(상).gif 홀랜드(네덜란드) 계통의 가난한 9 남매 중 네 번 째로 태어난 코넬리어스 밴더빌트는 열한 살 때 학교를 중퇴하고 나룻배로 뉴욕 항만의 스태튼 섬과 맨하탄 섬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운송해 주는 부친의 사업을 도왔다. 1810년 16세 나이에 모친으로부터 100 달러를 융자받은 코넬은 작은 돛단배를 사서 사람과 화물 운송 선박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저운임 정책으로 사업을 번창시켜 1년 안에 융자금 100달러는 물론 이익배당금 1000 달러를 모친에게 지불할 수 있었다.

1812년 미국의 영국 및 속령 캐나다와의 전쟁 중 정부로부터 뉴욕시의 해운사업을 하청 받자 그의 사업은 크게 성장했고 1814년부터 4년간 더 큰 배들을 구입해 뉴욕과 뉴잉글랜드, 남쪽으로는 남 캐롤라이나 주까지 해운사업을 펼쳐 나갔다. 1818년 소유했던 범선(돛단배)들을 매각하고 동업자 토마스 기븐스 (Thomas Gibbons)와 증기선을 구입했다. 두 동업자들은 뉴욕과 필라델피아 간의 운임을 경쟁자보다 75%나 싸게 받아 해운사업을 독점했다. 당시 뉴욕 정부로부터 독점 해운운송 계약을 받고 가격통제로 해운전매 사업을 벌려온 풀톤과 리빙스턴은 새로운 경쟁 위협을 느끼고 코넬과 기븐스를 매수하기위해 엄청난 봉급과 보너스를 제의했으나 코넬은 자유경쟁을 통한 투쟁을 결심하고 그들의 요구를 거절했다. 당황한 풀톤과 리빙스턴은 불법으로 선박운임을 내렸다는 이유로 두 경쟁업자를 고소했다. 1824년 미 대법원은 “고객을 위해 가격경쟁은 불가피하다”는 판결을 내려 미국 최초의 자유경쟁을 위한 시장경제의 막을 열었다. 가유경쟁을 통해 시장경제를 개방하게 만든 코넬의 공헌은 소비자들의 권익을 보호했을 뿐 아니라 미국이 세계 경쟁에 앞설 수 있는 역사적인 기점을 만들었다.


1829년까지 동업으로 큰 재산을 축적한 코넬은 동업을 결별하고 독립을 선언했다. 우선 뉴욕시 허드슨 강의 해운업에 착수, 그의 독특한 저가정책으로 경쟁자들을 없애고 뉴욕의 알바니 시, 롱 아일랜드, 컨네티커트 주를 연결시키는 해운 사업망을 펼쳐 나갔다. 1840년에는 증기선 100척을 소유한 미 최대의 선박회사로 성장, 미국에서 종업원을 가장 많이 고용한 업체로 군림했다. 코넬은 서비스 또한 개선, 승객에게 편안함은 물론 큰 선박의 호화로움까지 제공했다.


1849년에는 캘리포니어 지역 ‘골드 러쉬 (California Gold Rush)’로 남미에서 몰려드는 노동자들을 값싸게 운송하기 위해 니카라과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 파나마 운하를 통과하는 경쟁자들보다 600마일의 여행 거리와 이틀 간의 여행기간을 단축시켜 경쟁자들을 제압했다. 이로인해 그는 연 100 만 불의 순이익을 냈다.


1850년에 그는 처음으로 전용 호화선을 타고 유럽여행을 떠났다. 외부에서 고용된 경영인들은 그가 없는 틈을 타 그의 사업을 사취하려했고 이로 인해 커다란 손실을 초래했다. 같은 해 북 대서양 해운사업에 눈독을 들인 코넬은 영국정부의 보조를 받는 커나드 해운사와 경쟁을 시도했다가 실패하는 불운을 겪었다. (계속)


● 국적: 미국 
● 출생: 1794년 5월 27일 미국 뉴욕시 
● 사망: 1877년 1월 4일 미국 뉴욕시 
● 직업: 선박 및 철도사업가, 프로모터 
● 재산규모: 1,596억 달러 
● 세계 100대 부호 순위: 3위 
● 산업부문: 선박 및 철도운송 
● 사업전략: 저가정책으로 틈새시장 침투 
● 사업특성: 자유경쟁을 통한 시장개방의 선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