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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신문
ㆍ수입맥주 시장의 불편한 진실, 알면 술 깬다

아사히, 기린, 삿포로, 산토리 등 일본 맥주가 인기다. 그런데 하이트, 오비, 롯데 등 국내의 대표적인 주류업체들이 이들 경쟁 맥주를 앞다퉈 수입해 팔고 있다. 자신들의 브랜드를 살리려는 노력 대신 외국제품을 들여와 손쉽게 이익을 챙기는 데만 열심이다. 

수입맥주 시장의 불편한 진실, 알면 술 깬다

맥주를 좋아하는 백모씨(40)는 요즘 수입맥주를 즐겨 마신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맥주보다 맛이 있고, 국산 맥주와 가격 차이도 얼마 나지 않기 때문이다. 요즘 대형마트에서 100㎖당 500원, 2000원 균일가 등 수입맥주 할인행사를 자주 여는 것도 수입맥주를 부담없이 구입할 수 있는 요인이다. 백씨는 대형마트에 갈 때마다 일본 수입맥주를 고르는 경우가 많다. 백씨는 “마트에서 맥주를 사는 사람은 대부분 수입맥주를 고른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맥주는 안 팔리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고 말했다.

백씨의 말대로 요즘 일본 수입맥주의 인기가 뜨겁다. 한국인의 입맛에 맞고 진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수입맥주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7월 17일 관세청이 발표한 ‘2013 상반기 맥주 수입동향’을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 최대 맥주 수입 대상국이 일본이다. 올해 맥주 수입 대상국가는 43개국인데, 수입맥주 3병 중 한 병은 일본 맥주다. 관세청 자료에 따르면 2009년부터 2011년까지 일본 수입맥주 증가율은 105%로 수입맥주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일본 수입맥주가 빠르게 국내 맥주 시장을 잠식하면서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비상이 걸렸을 법하다. 하지만 웬걸.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느긋하기만 하다. 일본 수입맥주의 공세가 아무리 거세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다.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여유를 부리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일본 맥주를 국내 맥주 업체가 수입·판매하고 있는 게 그 비밀이었다. 

일본 수입맥주의 대표 브랜드는 아사히맥주, 기린맥주, 삿포로맥주, 산토리 등이다. 산토리는 오비맥주가 수입하고 있고, 기린맥주는 하이트진로가 들여오고 있다. 아사히맥주는 롯데칠성과 일본 아사히맥주 합작회사인 롯데아사히주류가 들여와 판매 중이고, 삿포로맥주는 매일유업이 수입하고 있다. 국내 업체가 스스로 외국의 경쟁 제품을 들여와 자신들이 만든 제품과 경쟁시키는 어이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마치 현대자동차가 도요타 자동차를 수입해 팔고, 삼성전자가 애플 아이폰을 들여와 판매하는 꼴이다. 

이러다 보니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는 내수가 줄고 일본 맥주 판매량이 늘어도 큰 타격을 받지 않는다. 

한국마케팅관리학회 전달영 회장(충북대학교 교수)은 “오비맥주와 하이트진로가 외국 경쟁업체의 맥주를 들여와 파는 것은 일종의 자기부정이나 마찬가지”라며 “자신들이 만든 제품의 품질과 경쟁력을 높이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경쟁업체 제품을 들여와 판매해 이익을 얻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전자가 아이폰 수입해 파는 격

전 회장은 “맥주를 대표하는 나라인 독일의 경우 로컬 브랜드를 살리기 위해 경쟁 맥주 수입 요건을 엄격하게 한다”고 말했다.

홍종학 민주당 의원도 “국내 맥주산업은 발전하지 못하고, 업체들은 가만히 앉아서 돈을 버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홍 의원은 “맥주시장에 경쟁이 도입될 것을 예상해서 독과점 업체에서 맥주를 수입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국내 맥주산업이 발전하지 못하고, 수입맥주에 시장을 내줘도 기업들은 별 손해가 없다. 특히 오비맥주는 외국자본이다. 국내 맥주산업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고 지적했다.

국내 맥주 업체는 “소비자들의 요구가 많아서”라고 해명했다. 아사히맥주를 수입해 판매하고 있는 롯데아사히주류 관계자는 “일본 맥주에 대한 관심이 높았고, 수입맥주 시장을 넓히기 위해서 수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프리미엄 일본 맥주인 산토리맥주를 수입하고 있는 오비맥주 관계자도 “소비자의 선택권을 늘리자는 차원에서 수입을 시작했다”면서 “신제품을 내놓고 싶지만 시장성이 적다. 소비자의 기대감이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일본 맥주의 수입·판매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 일본 수입맥주 시장이 커진 데에는 유통망이 잘 갖춰진 대기업이 수입을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 시장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아사히맥주다. 2004년 롯데칠성과 아사히맥주가 롯데아사히주류를 공동으로 설립한 후 한국에 시판되기 시작했다. 아사히맥주는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연평균 47% 성장했고, 수입맥주 중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롯데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등 유통업계의 강자로 꼽힌다. 2010년 국내에 시판되기 시작한 삿포로맥주는 매일유업이 수입하고 있는데, 매일유업은 국내 대표적인 유가공업체다. 매일유업은 와인 사업 업체인 레뱅드매일을 통해 엠즈베버리지(M’s Beverage)라는 자회사를 설립했다. 국내 1위 맥주 제조·판매업체인 오비맥주는 2010년 말 산토리맥주를 들여왔고, 하이트진로는 2011년 말 기린맥주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주류 유통망이 확실한 기업에서 일본 맥주를 수입하면서 행사도 다양해지기 시작했다. 이마트 주류 관계자는 “수입맥주 매출이 최근 2~3년 사이에 크게 증가하고 있다”면서 “대기업이 일본 수입맥주를 들여오면서 다양한 행사를 펼치는 것도 판매량이 늘어난 것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내 맥주업체 관계자는 “작은 중소업체에서 수입판매할 때와 비교하면 일본 수입맥주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며 “대기업의 유통망이 잘 갖춰져 있어서 이벤트나 할인행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국내 맥주 업체들이 수입맥주를 통해 손쉽게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독과점 체제와도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지난 4월 공정거래위원회가 발표한 ‘2010년 시장구조조사 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맥주는 대표적인 독과점구조 유지 산업이다. 독과점구조 유지 산업은 전반적으로 순부가가치 비율은 높지만, R&D 비율 및 해외 개방도가 낮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승용차, 맥주, 정유 등 47개 산업이 독과점구조 유지 산업으로 꼽혔다.

맥주 시장에 중소기업 진입 장벽을 낮추는 ‘주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홍종학 의원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12년 기준으로 전체 맥주 시장에서 오비맥주는 50.4%, 하이트진로는 45.7%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연구개발비는 독과점 산업 중에서 최하위권이다. 공정위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현재 국내 맥주제조업체의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0.75%에 불과하다. 독과점구조 유지 산업의 평균 비율 1.4%에도 미치지 못했다. 내수 집중도의 경우 독과점산업 평균이 77.4%인데, 맥주는 87.3%를 차지했다. 

독과점 구조에 안주 연구개발 외면 

소비자들의 욕구와 취향이 다양하지만 국내 업체들은 연구개발을 등한시하다보니 품질이 소비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가지 못한다.

공정거래위원회 시장구조개선과 관계자는 “독과점 산업의 경우 연구개발에 대해 등한시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않아도 돈을 벌기 때문”이라며 “맥주 독과점 업체가 수입맥주까지 팔면 독과점 체제가 바뀌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외국 맥주를 수입해 손쉽게 돈을 벌다보면 국내 업체들의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홍종학 의원은 “지난해 <이코노미스트>지에서 ‘화끈한 음식, 지루한 맥주’라는 제목으로 한국산 맥주 맛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왔다. 원인을 찾아보니 관련 제도였다”면서 “주세법이 독과점 기업을 위한 제도였고, 이를 바꿔서 중소업체가 뛰어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맥주 시장은 중소기업이 진출하기 어렵다. 세금 때문이다. 신생 기업이 맥주 시장에 진출하려면 72%의 높은 주세율을 적용받는다. 소규모 업체가 높은 세금을 감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제조시설 규제도 진입장벽이다. 2011년 중소기업에서 맥주 세븐브로이를 출시했지만 영향력은 여전히 미미할 뿐이다. 

전달영 한국마케팅관리학회 회장은 “현재는 중소기업이 맥주 시장에 뛰어들기 어려운 구조다. 법을 바꿔서 중소기업을 살려서 다양한 맥주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국내 맥주산업이 살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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