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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국일보

ㄱ.jpg


대학 선수들까지 "성적 저조하면 코치·선배에 매맞기 다반사"

10명 중 9명 "구타경험"… 반복되는 가혹행위에 운동 싫어져 그만두기도

어린이 체육교실서도 군기 

"내가 너희들 때문에 욕먹어야겠냐. 다들 대가리 박아!" 경기 이천의 한 고교 축구부 신입생 김지훈 박재윤(이상 가명)군은 6월 어느 날 2학년 선배의 집합명령을 받고 운동장 구석에서 10분 넘게 '원산폭격'을 했다. 2학년 선배는 며칠 전 3학년 주장으로부터 "선배 대하는 신입생들 태도가 불량하다. 잘 가르쳐라"는 꾸지람을 듣고 1학년들을 집합시킨 터였다. 선배는 김군과 박군의 땀이 흥건히 운동장 바닥을 적신 뒤에야 둘을 일으켜 세웠고, 그런 뒤에도 주먹으로 복부를 수차례 때렸다. "똑바로 해라"는 엄포도 잊지 않았다. 합숙소에서도 또 얼차려를 받은 김군은 결국 학교를 옮겼다. 박군도 전학 갈 생각이다.

엄격한 서열을 강조하고 폭력을 통해 이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군대문화의 폐해가 가장 심각한 분야 중 하나가 스포츠계다. 상대와 싸워 이기기 위해 극기와 훈련을 강조하는 스포츠의 특성은 본질적으로 군대문화와 일맥상통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이에 머물지 않고 지도자나 선배에 대한 절대 복종, 훈련이라는 미명으로 습관처럼 가해지는 구타와 얼차려는 정정당당한 승부를 가르치는 스포츠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국내 학생 운동선수가 가혹행위를 경험했다는 비율은 10명 중 9명일 정도로 스포츠 교육계는 폭력으로 얼룩져 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10년 발표한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대학생 운동선수 643명 중 577명(89.7%)이 구타 등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가혹행위는 주로 선배들에 의해 합숙소에서 이뤄진다. 대학 수영선수인 박모(22)씨는 "훈련할 때 기록이 잘 안 나오면 선배나 코치에게 맞을 각오를 해야 한다"며 "늘 잘할 수 없는 노릇인데 다그치고 몰아세우면 된다고 여기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이 같은 훈육은 반짝 성과를 낼지는 몰라도 결국 선수들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하고 오히려 스포츠와 결별하게 만든다. 4년 장학생으로 대학에 합격한 레슬링 유망주 김지현(21ㆍ가명)씨도 얼차려와 따돌림으로 인해 운동을 떠났다. 중학교 때 유도를 했던 김씨는 고등학교에 올라가 레슬링에 입문했다. 시작은 남들보다 늦었으나 그는 21세 이하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전국대회에서도 수 차례 수상하는 등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간 뒤 선배들의 계속된 얼차려와 집단적 따돌림을 견디다 못해 한때 자신의 전부였던 레슬링을 인생에서 지워버렸다. 김씨의 아버지(52)는 "나도 억울하고 분한 기분을 참지 못하고 있는데 당사자는 어떻겠느냐"며 울분을 터트렸다. 


ㄱ2.jpg


지난해 대한체육회 조사에서도 가혹행위를 경험한 학생 운동선수 가운데 '인격적인 모욕감으로 운동을 당장 그만두고 싶었다' '그만둘 정도는 아니지만 운동이 싫어졌다'고 답한 이들이 전체의 62.1%(85명)에 달했다. 반면 '더욱 열심히 운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한 이는 22.6%(31명)에 불과했다. 

강압적인 훈련과 얼차려가 비단 대회 성적이나 입시 때문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서열과 복종을 강요하는 문화에서 비롯되는 일이 많다. 전형적인 군대문화의 폐해다. 순수한 목적으로 태권도 학원 등을 다니는 어린 학생들마저 이 같은 폐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충북 청주에 사는 김미정(39)씨는 최근 9살 아들 현석이가 두 살 어린 남동생에게 버럭 화를 내며 "주먹 쥐고 엎드려뻗쳐!"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김씨가 "어디서 그런 말을 배웠냐"고 추궁하자 현석이는 쭈뼛거리며 말문을 열었다. "파란 띠를 따려고 연습하는데 동작이 틀리면 선생님이 엎드려뻗쳐를 시키고 혼냈어요." 어린 아들이 태권도 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단 5개월만에 폭력을 학습한 것이다. 김씨는 "이렇게 어린애들에게 왜 윽박지르고 군기를 내세워 태권도를 가르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며 "아이가 운동이라면 즐거움보단 얼차려를 먼저 떠올리게 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경기의 한 고교 체육교사인 김모(51)씨는 "운동부 내의 군대문화는 초등학교에서부터 대학까지 만연해 있다"고 말했다.

무서운 것은 이 같은 운동부 분위기에 처음에 강한 거부감을 갖던 이들도 시간이 지나면 이를 내면화한다는 점이다. '운동선수 인권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에서 폭력행위가 '이유 없이 기분에 의해 발생했다'고 답한 대학 1학년생 비율은 42%였으나 4학년생은 그 절반 수준(24.5%)에 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운동부에서는 당연하니까' 폭력행위에 대응하지 않았다고 답한 비율도 학년이 올라갈수록 높아진다. 4학년생은 26.5%로 1학년생(19.3%)보다 7.2%포인트 높았다. 

연구를 진행한 류태호 고려대 체육교육과 교수는 보고서에서 "학생선수들은 지도자를 소유주란 뜻의 오너(owner)라고 불렀다"며 "절대 권력자의 눈에 잘못 들면 안 된다는 생각과 훈육 시스템을 통해 학생선수들은 얼차려, 위계문화 등을 자ㆍ타율적으로 습득하게 된다"고 말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원 정책개발연구실 김양래 책임연구원은 "처음〈?선배의 지시를 반드시 따라야 한다는 규율을 의심하다가도 잦은 얼차려 등에 익숙해지면 이를 당연한 듯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김엘리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여성학)는 "계급서열이 분명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명령에 복종하게 하는 군대문화가 군대 외의 조직에서도 엄격한 서열제도, 명령식 의사소통구조, 불순종에 대한 처벌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며 "내면에서 작동하는 군사주의 의식을 성찰하도록 하고 일상적 폭력성에 대한 감수성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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